호의를 거절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 내가 풍요를 받아들이는 법을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

상대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일상 장면


누군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면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선물을 받으면 “이런 걸 왜 사주세요?”

누군가 도움을 주려고 하면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혹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나요?

겉으로 보면 참 겸손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것이 언제나 겸손일까?"

누군가 내게 시간과 돈과 수고를 기꺼이 내어주고 있는데, 

그것을 계속 사양하거나 다시 돌려주려고 하는 행동은 상대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요?

오히려 상대가 베풀고 싶었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행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호의를 받는 것도 하나의 능력일 수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만 풍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 역시 풍요를 받아들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덕분에 편하게 해결했어요.”

이렇게 말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다음에 내가 좋은 것을 나누면 됩니다.

“다음에 내려올 때 저희가 맛있는 것 가지고 올게요.”

이것은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다시 흘려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게도 오래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


따뜻한 식탁에서 음식을 권하고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

어릴 때 시골 친척집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 너무 반가웠고,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말했던 날이었습니다.

친척들은 바로 읍내 시장에 가서 삼겹살을 사왔습니다.

집에서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친척들과 함께하며 참 맛있고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버지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 하나 때문에 그 즐거운 자리가 무거워졌습니다.

먹으려고 하면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손을 치우고, “사양이 미덕이야!”라고 말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 상황 자체가 참 답답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장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반가운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고, 함께 맛있게 먹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장면에서 한 가지 질문을 발견합니다.

"사람은 왜 자신에게 들어오는 좋은 것조차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나 역시 같은 생각을 배워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나 역시 어린 시절 그 생각을 그대로 배웠다는 점입니다.

해외 근무를 나갈 때 어머니가 좋은 선글라스를 사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왜 이런 비싼 걸 나한테 사줘?”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히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지인이었던 전문직 종사자이자 사업가인 분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끼는 것과 호의를 무시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은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니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반복해서 보고 들었던 생각이 어느 순간 내 생각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할게요”에는 때때로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


상대의 호의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사람

“제가 할게요.”

이 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누군가가 나에게 베풀고 있는 순간에도 자동으로 내가 다시 베푸는 쪽으로 돌아서는 경우입니다.

상대는 식사를 사주고 싶었는데 내가 계산하려고 하고,

상대는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내가 더 좋은 것을 돌려주려고 하고,

상대는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내가 오히려 그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배려 깊어 보입니다.

그러나 반복되면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정말 상대의 호의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좋은 것을 받는 순간에도 자격을 의심한다면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런 생각까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것을 받아도 되나?”

“괜히 폐를 끼치는 것 아닐까?”

“상대가 나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내가 받아놓고 뭔가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호의에만 머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도

“내가 이런 기회를 받아도 되나?”

성공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저런 삶과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히 밥 한 끼를 사양하는 습관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에 어떤 기본값이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생각은 언제부터 내 것이 되었을까?

여기에서 밥 프록터가 이야기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반복해서 들었던 말과 반복해서 보았던 행동이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기준이 됩니다.

“아껴야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좋은 것을 받으면 미안해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사고방식인 패러다임을 깨닫고 새로운 관점을 발견한 사람

그저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배운 생각이라면, 내가 원하는 생각도 반복해서 새로운 기본값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서 나는 자기계발의 여러 거장들이 말해온 가르침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그 생각을 더 깊이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과거의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기본값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 답을 웨인 다이어의 가르침, 나폴레온 힐의 성공 연구와 함께 연결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까지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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