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원망만 하던 내가, 내면의 자유를 위해 결국 바꾼 '이것'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고 악해.' '착각하지 마라, 정신 차려!'
이 말은 지금의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한때 모든 원인을 밖에서 찾았던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꽤 좋은 조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첫 직장은 외국계 기업이었다. 헤드헌터의 추천을 받아 입사했고, 면접 과정에서도 팀장의 선택을 받았다. 입사 전부터 나를 바라보는 기대가 있다는 것도 느꼈다.
막상 들어간 팀에는 내가 예상했던 체계가 없었다. 새로 만들어진 조직이라 업무 매뉴얼도 부족했고,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었다. 협력사와의 관계 역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채 팀은 오히려 그들에게 의존하며 위치가 바뀐 관계로 보였었다.
나는 준비된 조직에서 실력을 보여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처음부터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곳이었다.
왜 억울했을까, 알고보면 피해의식이 낳은 '착각'
옆 파트에서는 선임이 후임을 붙잡고 업무를 하나씩 알려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왜 나는 이런 곳에 배치됐을까.
왜 나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을까.
왜 나만 알아서 해야 할까.
처음에는 합리적인 불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만이 쌓이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 증명하고 싶어졌다.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증거를 찾고, 선배들의 태도를 비난하고, 협력사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내가 얼마나 불합리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 설명할수록 오히려 내 마음은 더 편해졌다.
적어도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억울함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보다 피해자라는 역할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내 태도는 결국 주변에도 전달됐다.
처음에는 나에게 기대가 컸던 팀장과 동료들과의 거리도 생겼다. 나는 그것마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고립됐다.
그리고 결국 회사를 나왔다.
도망치듯 사표를 썼다.
그 이후 해외 취업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커리어는 다른 방향으로 풀렸던 것이다.
문제는 일이 잘 풀린 뒤에도 과거의 감정은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마음속에서 계속 재판하고 원망속에 있었다.
내가 바꾼 것은 과거가 아니라 해석이었다
시간이 지나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면서 여러 책을 읽었다. 그중 T. 하브 에커의 『백만장자 시크릿』에서 피해자와 부에 관한 문장을 접했다.
"당신은 피해자이거나 부자일 수 있다. 하지만 절대 둘 다 될 수는 없다."
그 문장이 유독 오래 남았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라는 이야기 이상의, 삶의 주도권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과거의 나를 다시 바라봤다.
당시 조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눈에 그 때는 성장의 기회였다.
그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환경은 부족했다.
그리고 나는 그 부족한 환경에서 더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두 번째 가능성을 보지 않았다.
대신 첫 번째 사실을 붙잡고 있었다.
같은 조직에서 자기 몫을 해내며 승승장구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당시의 나를 비추어 보며 깨달았다.
기대를 받고 들어온 사람이 실무에 들어오자 계속 환경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면, 나라도 답답했을 것 같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것이 아닌, 내 태도로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이 인정은 원망으로 가득했던 나의 내면을 해방시켰다.
내가 만든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는 내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진짜 그때부터 더 넓어졌다
과거 이직 과정에서 전 직장 동료들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도 있다.
예전 같았다면 또다시 그들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을 해봤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어떤 평가를 했을까?
그 질문을 던지고 나니 소문의 진위보다 중요한 것이 보였다.
이미 지나간 관계를 붙잡고 계속 화를 내는 동안, 정작 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과거에는 한 동료가 작은 회사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비웃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 역시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내가 불안할수록 다른 사람의 선택을 낮춰보면 잠시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은 결국 내 안에 남았다.
이제는 남이 어디로 가는지 굳이 판단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삶이 있고, 나에게는 내가 책임지는 내 삶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것도 그만뒀다.
그때의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고, 다만 그 방법이 서툴렀던 것이다.
과거를 없애는 것과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은 달랐다.
없애려 하니 원망이 남았다.
받아들이고 의미를 다시 붙이니 경험이 됐다.
그때의 실패가 지금의 비즈니스 방식이 됐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관점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됐다.
당시에는 직장생활의 방황과 고립이 그저 실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내 사업을 직접 운영하면서 돌아보니 그 경험이 의외의 기준이 되어 있었다.
사람 탓 대신, 먼저 시스템을 살핀다.
문제가 생겼다면 탓을 하기 전에 내가 제공하는 가치가 충분한지 생각한다.
예전의 질문은 이랬다.
'왜 이랬지?'
지금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이 질문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꿨다.
세상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게 됐고, 사람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맡기지도 않게 됐다.
문제가 생기면 그 안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통제 가능한 부분'을 찾는다.
그게 내가 과거의 경험에서 가져온 가장 큰 자산이다.
내 삶을 경영할 사람은 나 외에는 없다
지금도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사람 때문에 답답할 때도 있고,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질 때도 있다.
다만 달라진 사실은 그 사실을 붙잡고 하루를 보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지 본다.
어렵다면 대응 방식을 바꾼다.
그마저 어렵다면 그 경험에서 다음에 사용할 것을 건져낸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과거의 사건도 달라졌다.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억지로 용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내 인생의 다음 장면까지 그 사람들이 결정하게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해줬는지를 따졌다면, 지금은 내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먼저 본다.
그 차이가 결국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내 선택을 만들어가는 힘이었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지 알게 됐고,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싶은지도 명확히 알게 됐다.
무엇보다 내 삶에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알게 됐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일 뿐,
지금 내가 어떤 가치를 만들고 어떤 흔적을 남길지는 오직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 인생의 경영자는 결국 나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흔적을 남기는 것.



